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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며

by 방철 2021. 1. 1.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둘째 치더라도 세계가 안 시끄러운 적이 있었겠냐마는 20년 한 해는 유독 더 시끄러웠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나는 시끄러운 세계와 어느정도 단절된 생활을 하던 상황이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2N년 살면서 처음으로 나에게 집중한 해였던 20년. 그 20년에 대해 조금 말해볼까 한다.

  19년. 상반기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를 겪으며 너무나 위태로운 생활을 했었다. 모아둔 돈은 점점 비어가고
사회적 편견을 무릅쓰고 힘들게 정신과 내원까지 해가며 약을 먹었지만 바뀌는 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자니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전문 상담가의 상담료는 너무 비쌌고 정신과 약을 계속 센 걸로 바꿔가며 강제로 참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암울한 상황. 

  19년. 하반기에 내가 고통을 겪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극적으로 해결됐고 나는 급속도로 좋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파블로프의 개처럼 원인 하나가 해결됐다고 막연히 이제 다 잘 되겠지 라는 생각만 하게 됐을 뿐이었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는 사라졌지만 현실 도피의 대가로 우울증은 점점 심화되었다. 모아둔 돈은 정말 바닥을 보였지만 친구 집에 빌붙어서 어떻게든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던 그때. 정말 신기한 만남이 생겼다. 

  나에겐 정말 친한 친구 두 명이 있다. H군과 J군. 하반기에 J군의 집에 빌붙어 살 때 H군이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얘들아 내가 진짜 개쩌는 사주집 알아왔어. 여기 대박이야 3만 원밖에 안 하는데 다 맞아."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주를 믿지도 않는 나는 처음엔 흥미가 안 갔다. 하지만 H군이 계속 얘기를 하자 나는 '3만 원이면 아껴먹으면 1주일 식비인데 눈 딱 감고 한 번만 가볼까'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약해진 상태라 그랬는지 나는 못 이기는 척 H군이 소개해준 사주집에 갔다.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하니 앞타임 분이 아직 상담 중이셨다. 잠깐 의자에 앉아 방을 둘러보는데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라 신기했다. 나는 점, 사주, 무당 등등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사주집도 사진과 같은 이미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간 사주집의 이미지는 목조 인테리어에 나무 냄새가 나는 찻집 같은 이미지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혀 사주집같지 않았다.

  이런 이미지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미지출처 유튜브 민속방송 https://youtu.be/WO33JWY8I1Y

  그렇게 잠깐 구경을 하니 어느덧 앞에 분 상담이 끝났고 역술가분이 나를 부르셨다. 서로 인사를 한 뒤 역술가분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이런 곳을 왜 오셨어요?" 그렇다. 나는 힘든 티 내기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 항상 웃고 다녀서 걱정 없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역술가 분과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역술가분은 나에게 생년월일과 생시를 물어보았다. 내 정보를 알려드리자 역술가분은 아주 두꺼운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 한자를 쓰시더니 손가락으로 뭔가 숫자를 세셨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이런 곳 온 이유가 있었네요. 힘든 거 지나가고 오셨네.."

   그리고 역술가분은 갑자기 과거 얘기를 시작하셨다. 올 상반기엔 정신 쪽으로 상당히 안 좋았을 거 같고 3년 전이면 고3이죠? 공부는 잘 못했을 거고...... 나는 여기서 "저 공부 괜찮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역술가분이 "제가 오해가 있게 말을 했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는 열심히 했어도 결과가 안 나왔을 거란 말이에요. 주변 환경이 아예 받쳐주질 않으니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그런 상황이었을 거 같은데. 그중에서도 부모님이랑 문제가 있었을 거 같고."

  소름이 끼쳤다. 너무 정확한 설명이라 잠깐 멍해졌다. 타인 앞에 갑자기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역술가분은 계속 이어서 말을 하셨다. "어릴 때 고생 꽤나 했을 거 같네요. 사실 나이 좀 있으신 분이 이런 상태로 저한테 왔으면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요. 이 분 자살할 수도 있겠다. 근데 지금 오신 분은 나이도 젊고 힘든 거 지나간 상태로 저한테 와서 그런 생각까지는 안 드네요. 잘 버티셨어요. 정말 힘들었을 텐데.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내담자분은 겨울이 세 번 겹친 거예요. 내담자분은 땅인데 겨울이 세 번이나 겹쳤어. 그럼 어떻게 될까요? 죽은 상태나 다름없는 거지. 불이라도 많으면 견딜만한데 불도 없어. 그러니까 진짜 힘들었을 거예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 말을 들으니까 청승맞게 눈물이 갑자기 주르륵 나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가 꽁꽁 숨겨뒀던 곳으로 갑자기 들어와 나에게 위로까지 건네어서 그랬던 건지..

  사실 이 뒤로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뒤에 한 얘기 중에 딱 이거 하나만 기억이 난다. 20년도 19년처럼은 아니지만 운세상 힘들 거라는 얘기. 하지만 역술가분은 이 말을 덧붙이셨다. 이미 지금까지 잘 견뎌온 사람이라 분명 이번 어려움도 잘 극복해낼 거라고. 그럴 일은 이제 없겠지만 정말 못 견딜 정도로 힘들 때 다시 찾아오고 아니면 찾아오지 말라고. 사주풀이는 끝났고 그렇게 내 2019년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이 찾아왔다. 정말 시작부터 문제가 많은 해였다.
모아둔 돈은 병원 다니느라 다 써서 월세방 보증금 넣을 돈도 없어 방도 못 구하고 그렇다고 알바를 하자니 코로나가 터져서 알바자리는 보이질 않고.. 어떻게 돈을 빌려서 자취를 시작하긴 했는데 알바가 안 구해져서 속이 타들어갈 때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시간대 알바자리가 나와서 바로 지원을 했다. 이 알바 공고는 참 신기한 게 내가 매일같이 알바몬 알바천국 앱을 몇 시간씩 돌려보기를 2주일 동안 했는데 찾지 못한 무려 5일 전 알바 구인 공고였다. 조심스레 연락을 드리니 사장님이 이미 12명 면접을 봐서 누구 뽑을지 대강 정해둔 상태인데 마침 오늘 마지막 면접자 면접이 오후 4시에 있다. 면접 보고 싶으면 5시에 올 수 있냐고 하셨다. 나는 꼭 간다고 약속드리고 면접을 보러 갔고 거기서 바로 채용이 됐다. 채용이 된 후 사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근데 알바 구인 공고 내렸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하셨어요? 저야 방철님 뽑아서 좋은데 신기하네요. 공고 봤다가 나중에 연락하신 거예요?"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어떻게 하늘에 기도를 안 하겠는가. 무교인 나였지만 정말 진심을 담아 하늘에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렸다.

  신기하게 이 알바를 구하고 난 뒤 다른 알바도 다 구해져서 내 하루 일과가 완성되었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잠깐 쉬었다가 오후 7시~오후 10시까지 다시 일.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씻으면 11시가 조금 넘었다. 평일은 이렇게 지냈고 주말에는 오후 2시~새벽 2시까지 일을 했다.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새벽 3시가 지나있었고 주변 친구들이 일이 안 구해져서 난리일 때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이렇게 풀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일을 하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살짝 생기기 시작했고 경제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 안정도 조금씩 찾아왔다.
알바만 하기엔 아까운 내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노트 한 권을 샀는데 20년이 끝날 때 이 노트 한 권을 책 내용으로 꽉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이번엔 경제분야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마침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사분이 강의를 열었는데 수강료가 너무 비싸 5월에 강의 신청을 하지 못했다. 그때 혼자 꽤나 울었던 거 같다. 울면서 이 생각을 했다. 다음에 다시 강의 열리면 무조건 듣는다. 그렇게 그 강의는 10월에 다시 한번 열렸고 10월엔 당당히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게 그 강사분이 10월 강의를 마지막으로 강사생활을 끝내셨다.

  6월엔 개인적으로 시작한 활동이 있다. 바로 기부다. 난 고3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부를 아예 못하진 않았기에 학업을 포기하고 알바를 하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이 남았는지 나는 항상 교육 관련 분야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교육받을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나 먹고살기 바쁘다고 기부를 하지 못했는데 20년 6월엔 기부를 시작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첫 기부를 했을 때 벅차오르는 그 감정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다.

  그 외에 7월부터 9월까지는 별 일 없이 지낸 거 같다. 일은 일상이 돼서 크게 힘들지 않았고 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었다. 그러던 와중에 8~9월에 일이 터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정확히는 허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허리가 굳어 그대로 이불 위에 쓰러졌다. 그 상태로 10분쯤 있었을까? 허리가 풀려서 다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자서 근육이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출근 전까지 허리 통증이 조금씩 있어서 오후에 병가를 내고 잠깐 병원에 갔다 왔다. 의사분은 나에게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셨고 나는 목부터 골반까지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분이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환자분은 늙으면 큰일 나겠단다. 아직 어린데 목부터 허리까지 전부 일자에 골반은 틀어져 있단다. 아직 젊어서 근육이 힘이 좋아 신체 지탱을 잘해주고 있지만 나이 먹으면 근력이 떨어져서 엄청 아플 거란다. 설상가상으로 신체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라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크게 없단다. 비싼 도수치료받아도 내 생활습관 개선이 안되면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게 되니까 오래 서있지 말고 앉아있지도 말고 스트레칭 자주 해주고 유튜브에 교정 운동 쳐서 열심히 따라 하란다. 오늘처럼 허리 굳거나 하면 병원 와서 물리치료받고 집에서 스스로 스트레칭 계속해주는 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란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돈 버는 걸 멈출 순 없어서 일을 계속하다가 10월에 강의가 열렸고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을 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 알바가 힘도 많이 쓰고 계속 서있는 일이라 일을 그만두고 그 시간에 강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뭐 물론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더라.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보상심리가 발동한 건지 일을 그만둔 시간에 강의를 듣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누워서 쉴 때가 더 많았다. ㅋㅋㅋㅋㅋㅋㅋ

  11월엔 H군이 사주집에 신년운세를 보러 가자고 해서 다시 가봤는데 이때는 뭐 크게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역술가분에게 내가 올 한 해 너무 잘 지냈다고 하니까 무난하게 보내기만 해도 성공한 한 해였을 텐데 본인 스스로 잘 지냈다고까지 하니까 정말 잘했다고. 이거 하나는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그냥 무난하게 20년 연말을 보냈다. 쉬기도 하고 공부도 조금 하고 책도 읽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H군과 J군에게 선물도 했다.

  20년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가 1. 자취방에서 살아남기 2. 책 많이 읽어서 노트 한 권 채우기 3. 듣고 싶은 강의 듣기
4. H군과 J군에게 선물하기 정도였는데 다 이룬 목표가 됐다. 거창한 목표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한 목표를 이루니 너무 기분이 좋다. 여기에 원래 목표는 아니었지만 중간에 시작한 기부까지 더하면 목표 초과 달성을 한 셈이네. 100% 최선을 다해서 살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게 보낸 2020년 같다. 막연히 생각할 때와는 다르게 글로 쓰니 감회가 새롭네.

  어쩌다 보니 2020년을 돌아본 게 아니라 19~20년을 돌아본 글이 됐다. 생각보다 글이 너무 길어졌지만 글이 길어진 김에 21년 목표도 한 번 써봐야겠다.

선언합니다. 나 방철은 21년에

1. 20년보다 3배 이상 돈 많이 벌기
2. 책 많이 읽어서 노트 2권 이상 채우기
3. 학과 1등 유지하기
4. 내가 구상한 블로그 로드맵 달성하기
5. 기부 꾸준히 하기
6. 지금 체지방률이 15% 정도 되는데 운동 열심히 해서 10~11% 정도 만들고 기회가 되면 바디프로필도 찍기
7. 영어 공부 시작해서 연말 정도엔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 할 수 있는 수준 만들기
8. 주변 소중한 사람들 잘 챙겨주기

이 8가지 목표는 꼭 이룰 것이며 중간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그것도 이룰 것을 선언합니다.

 

  민망하니까 급하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처음으로 만든 블로그의 첫 글. 나에겐 의미가 큰 글이다. 이 글에 있는 21년 목표는 꼭 이루어질 것이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겼으면 좋겠다.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1년 같이 멋지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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